여행
1년에 4개월만 허락된 길 상상 초월한 광활함, 척박함 [인도 라다크 마카밸리]
강병석 ・ 2시간 전
URL 복사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신고하기
4박 5일 마카밸리 트레킹 67km
일정 중 최고점인 콩마루 라(5,200m)로 향하는 길.
지금껏 국내외 여러 곳을 트레킹하면서 가장 좋았던 곳은 인도 히말라야 마카Markha밸리다. 광활하고 척박한 압도적인 대자연도 물론 기억에 남지만 무엇보다 옆에서 지켜본 가이드와 포터를 포함한 현지인들의 생활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욕심내기보다는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며 대자연에 순응하는, 그런 여유로운 삶이 그곳에 존재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때 묻지 않은 사람과 걸으며 때 묻지 않은 추억들을 품고 돌아올 수 있는 길이다. 게다가 이곳은 6~9월, 여름 시즌에만 개방되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레 공항 고도는 이미 해발 3,500m
마카밸리 트레킹을 하려면 인도 인도령 카슈미르의 라다크 지역에 있는 ‘레’라는 도시로 가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인도 델리 공항을 경유해 레 공항으로 갈 수 있다. 라다크는 해발 3,000 m가 넘는 고원 지대고 히말라야산맥과 인더스강 상류에 걸쳐 있다. 레 공항의 고도 역시 3,500m이다. 레에 도착하니 우리나라 가을처럼 뽀송하고 쾌적한 공기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살짝 어지러웠다. 고산증세가 바로 시작된 것. 그리고 과자들도 기압차로 빵빵하게 부풀었다.
강렬한 태양. 깨끗하게 파란 하늘. 사방의 고산 산맥. 레의 첫인상은 환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도 적응을 위해서 레에 도착한 날 즉시 트레킹을 하지 않고 하루 이틀 정도 레 시내를 둘러본다고 한다. 우리도 첫날은 다른 일정 없이 마카밸리 투어 신청만 하고 식사를 한 뒤 냉큼 호텔에 들어갔다.
레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햇살이 매우 강렬한 이곳은 새벽 6시면 벌써 대낮처럼 밝다. 고산 적응과 관광을 겸해 레 팰리스와 체모템플TSEMO temple에 다녀왔다. 레 팰리스는 라다크 왕국 당시의 궁전이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상태다. 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꼭 한 번 들를 만하다.
레 팰리스에서 내려다 본 레 시내.
체모템플은 레 팰리스보다 더 높다. 오르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건조한 흙길이라서 발이 자꾸 미끄러졌다. 고산지대 트레킹 맛보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가파른 경사도다. 하지만 레 시내를 한층 더 넓은 폭으로 볼 수 있어 오를 가치는 충분하다.
체모템플 근처에는 큰 타르초가 있다. 불교의 경문이 쓰인 오색 깃발인데 바람을 타고 진리가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레는 낡고 오래돼 먼지가 쌓여 있지만 단정한 나무 서랍장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관광객들에게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 네팔 카트만두나 포카라보다 훨씬 평화롭고 편안했다.
호되게 치른 트레킹 첫날 신고식
Day 1 칠링(3,170m)~카야(점심 식사)~스큐(3,380m)~사라(3,570m) 22km
드디어 마카밸리 트레킹을 시작한다. 투어 회사 앞에서 어제 먼저 인사를 나눈 가이드 갤포와 포터 무릎을 만났다. 이 둘은 레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겉모습이 우리와 비슷했다. 라다키(라다크 인)들의 국적은 인도이지만 지리상 더 가까운 티베트와 생활문화나 인종적으로 비슷하다고 한다. 언어도 티베트 방언인 라다크어를 쓰고, 곳곳에서 불교 상징물을 많이 볼 수 있다.
스큐에서 사라로 가는 길. 바로 눈앞에 해가 작열하고 옆에는 빙하 녹은 물이 흐른다.
포터의 첫 인상은 한마디로 ‘놀라움’이었다. 복장이 너무 말끔했다. 한 손에는 아이폰을 쥐고 나이키 신발에 아디다스 바지에 멋스러운 선글라스를 꼈다. 그래서 우리 같은 관광객인 줄 알았다. 그동안 네팔과 인도네시아에서 봤던 포터들이랑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버스를 타고 칠링으로 가는 길은 사진 속에서 봤던 모습들보다 훨씬 경이롭고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쭉 뻗은 도로와 황량한 바위산들은 미국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하게 했다. 40~50분 달리고 나서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는데 여전히 장관을 이루는 바위산들이 어마어마하게 펼쳐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잔스카르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줄기도 세고 물의 양도 많아 위압적이었다. 이 시원한 강줄기를 왼편에 끼고 걷는 게 마카밸리 트레킹 시작이다. 칠링 다리까지 차를 타고 가기로 했으나 도로 공사가 한창이라 멈춰야 했다. 공사 중인 차량들이 빠지려면 1시간 30분이 걸린다기에 지체 없이 여기서부터 걷겠노라고 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정식 트레킹 시작 지점에서 사람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이용했다는 도르래 트롤리 박스가 보였다. 이것을 타고 강을 건너는가 하는 기대감이 살짝 있었는데 최근에 건설된 철교로 건넌다고 했다.
이때까지 마카밸리 트레킹은 실망스러웠다. 사방에서 공사를 하고 대형 트럭들이 지나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흙먼지와 매연이 사방에 날렸다. 이 흙먼지들은 카야까지 2시간 내내 함께했다. 매연과 먼지로 금방 지쳐버린 우리는 원래 예정된 장소보다 30분 전에 있는 작은 마을 카야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트레킹 중 필자(오현아)와 남편 박정후.
레에서 준비해 온 런치 박스를 먹으며 오늘 숙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예정지는 30분 거리에 있는 스큐였지만 에너지와 의지가 넘쳤던 우리는 더 멀리 가고 싶다고 했다. 갤포는 “그럼 3시간 떨어진 사라마을”이라고 했고 우리는 “사라에서 숙박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가이드의 3시간은 우리의 5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시 트레킹을 재개했지만 1시간쯤 지나 이내 지쳐버렸다. 주변 경관도 삭막하고 차들이 내뿜는 먼지도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 강렬한 햇볕이 정말 힘들었다. 선글라스를 써도 막을 수 없다. 40℃, 그늘 없는 땅인데 건조해 몸을 식혀줄 땀도 안 난다.
설상가상으로 당나귀 20마리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로막기도 했다. 여행자들의 캠핑용품을 싣고 가는 무리인데 1마리가 가기 싫다고 딴청을 피워서 모두 멈춰 섰다고 했다. 이런 일이 익숙했는지 가이드가 앞장서서 길을 터주었고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왔다. 당나귀들의 파업으로 길이 막히다니 새삼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카밸리 트레킹에서 머무는 시설들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고된 일정에 지친 여행자에겐 5성급 숙소가 따로 없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늘 없는 사막지대를 걷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너덜너덜해진 다리는 거의 반자동으로 움직였다. 입술과 눈은 건조하고, 특히 코가 말라서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다고 입으로 숨을 쉬자니 목이 건조해져서 물을 계속 마시게 되어 물배가 쉽게 찼다.
포터에게 짐을 일부 맡겼어도 짊어진 배낭이 너무 무거웠다. 그렇게 걷고, 걷고, 걷다 보니 대망의 숙소가 보였다. 숙소에 도착한 순간 안도감과 함께 갑자기 행복해졌다. 물 한 잔을 마시자 오는 동안 있었던 불평불만들이 어디로 갔는지 입가에 미소가 띠워졌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반 정도였는데 이미 날이 어두워졌고 바람도 꽤 차가워졌다. 햇볕이 사라지니 급속하게 기온이 떨어진다. 극단적이다.
마카밸리 트레커들은 캠핑을 하거나 현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다. 숙소는 도착한 날의 저녁식사와 그 다음날의 아침식사, 점심 도시락을 제공한다. 시설이 열악하긴 하지만 나에겐 이곳이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았다.
홈스테이 주인아저씨는 양동이 1개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워 세수하고 손발을 씻을 수 있도록 했다. 아궁이에서 직접 물을 끓여서 준비한 것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남김없이 야무지게 사용했다.
저녁식사로 라면 수프를 넣은 듯한 따뜻한 맑은 국과 현지 스타일의 볶음밥과 수제비가 나왔다. 냄새가 너무 좋았지만 녹다운 된 탓에 입맛이 없었다. 정말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고 잠이 들었다.
마카에서의 저녁식사. 야채볶음과 카레. 아주 맛있었다.
작은 것에 감사하니 행복이 보였다
Day 2 사라(3,570m)~마카(3,780m) 9.3km
푹 자고 나니 컨디션이 많이 나아졌다. 아침식사는 현지인들의 주식인 짜파티다. 짜파티는 보리로 만들어진 빵인데 난과 비슷하게 생겼다. 난은 밀가루로 만들어 부드럽지만 보리로 만든 짜파티는 난보다 좀 뻣뻣하지만 고소하다. 보통 아침은 짜파티에 잼과 꿀, 땅콩버터를 발라서 따뜻한 민트 티 또는 밀크 티와 같이 먹는다고 한다.
마카밸리 트레킹에서 만나는 마을 중 제일 큰 곳이 마카다. 홈스테이 장소도 10개나 있다. 루트 이름이 괜히 ‘마카’ 밸리가 아니다. 사라에서 마카로 가는 길은 삭막한 바위 절벽들 가운데 푸릇푸릇 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로 마카강이 평화롭게 흐르는 모습들로 채워져 있다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첫날보다 훨씬 덜 힘들었다. 물론 여전히 건조하고 지대가 높아 조금만 걸어도 숨이 쉽게 차올랐다. 트레킹 루트 중간에 냇가들을 만날 수 있어 손을 씻으면서 더위를 식히며 운행했다.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설산 캉야체2를 보며 걸었다.
둘째 날은 반나절 일정이었다. 오전 8시 반쯤 출발해 12시쯤 도착했다. 마카 숙소는 그림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2층짜리 건물이었다. 고생을 많이 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 여유 있고 평안한 하루를 보냈다.
심지어 온수 샤워도 가능했다. 먼저 펌프로 양동이에 물을 길어온 다음 보일러를 사용해 물을 데운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보일러가 아니라 태양열과 빛을 이용하는 신기한 기계였다.
씻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말들이 풀을 먹고 있었다. 말에 달려 있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개운하게 바람을 느끼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뜨거운 햇볕과 바람을 드라이기 삼아 머리카락을 말리고 방에 들어가서 따뜻한 침낭에서 낮잠을 잤다.
저녁식사는 최종 숙박 인원수가 확정되어야 해서 늦은 7시 반에 했다. 전날은 4명이었는데 여기 식당에는 20명이나 들어왔다. 그래서 가족적인 홈스테이가 아니라 하숙집 같았다. 메뉴는 야채볶음과 콩이 들어간 카레에 밥을 비벼서 먹는 것이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챙겨간 고추참치도 같이 비벼 먹으니 환상이었다. 보통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 고산병에 걸려 입맛도 없고 속이 엄청 메슥거렸는데 여기서는 이상하게 식욕이 돋고 배가 금방 고파졌다.
니말링 텐트촌과 캉야체.
맨발로 얼음 강물을 건너니 두 눈이 번쩍
Day 3 마카(3,780m)~한카(4,000m) 12.5km
하이라이트다. 마카밸리 트레킹 중 3일차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곳 중 제일 평화로운 마을을 지났다. 설산, 메마른 절벽, 마카강 그리고 청보리밭이 묘하게 장관을 이뤘다.
이날은 마카밸리강을 도강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짜릿짜릿하다. 돌다리가 없어 신발을 벗고 종아리 정도 수위의 강을 건너야 했는데 문제는 빙하수가 어마어마하게 차가웠다. 건너다가 조금이라도 큰 돌멩이가 보이면 그 위를 밟고 올라가 단 5초라도 물 밖에 나와 쉬어야 했다. 남편은 거의 울 것 같은 곡소리를 내며 뒤뚱뒤뚱 걸어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재밌던지 까르르 웃었고 옆에 있던 외국인 트레커들도 힘내라며 박수를 쳐주었다.
저 멀리 캉야체2(6,200m)의 설산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제법 버틸 만했는지 멋진 풍경을 넋 놓고 보면서 즐거운 트레킹을 계속했다. 이날 숙소 앞에서 청보리밭과 설산을 보며 일광욕을 하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풍경을 보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는 부모님과 딸 2명이 운영하는 작은 홈스테이다. 손님방도 2개밖에 없었다. 딸은 20대 초중반으로 비슷한 또래라 반가웠다. 영어를 거의 못 한다고 해서 직접 소통하진 못했지만 따뜻하고 순수하게 웃는 모습으로 이미 그 마음은 다 전해졌다.
여기서 메기라면을 먹어봤다. 손바닥 정도 크기의 2분 인스턴트 라면이었는데 인도 음식 특유의 카레향과 매콤함, 그리고 조미료의 짠맛이 특징이었다. 늘 향이 강하지 않은 음식만 먹다가 라면을 먹으니 무척 즐거웠다.
세계 각국에서 온 트레커들과 함께 니말링 텐트촌으로 향하고 있다.
문이 없는 화장실이라도 감사
Day 4 한카(4,000m)~니말링(4,800m) 10km
이제 드디어 마지막 숙소가 있는 니말링으로 간다. 생각보다 많이 걷지 않아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어제 만났던 주인집 첫째 딸이 먼 길 잘 가라며 배웅해 주었다. 우리는 깊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들에게서 왠지 모를 정겨움을 느꼈다.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놀다 가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고도를 꽤 올리는 날이다. 10분 걸으니 바로 오르막이다. 오른편에 계곡을 두고 계속 직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 고도가 4,000m라서 고산병 증세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관자놀이가 슬슬 아파 오기 시작했기에 고소적응을 위해 천천히 걷고 물을 최대한 많이 마셨다. 10걸음 걷고 20초 쉬고, 10걸음 걷고 20초 쉬고.
한카를 지나면 토춘체라는 캠핑 장소 겸 쉼터가 나온다. 여기부터 홈스테이가 없어 캠핑을 해야 한다. 삭막하고 높은 절벽 사이 평평한 잔디밭 캠핑촌을 보니 뭔가 평안하고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곳엔 오전 10시쯤 도착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음 장소로 출발해 인파가 많지 않았다. 햇볕은 뜨거운데 공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참 차가웠다. 경치가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에 조금 쉬었다가 갔다.
한편 마카밸리 트레킹은 홈스테이가 아니면 쉽게 화장실을 갈 수 없기 때문에 화장실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야 한다는 본능이 생긴다. 저 멀리 덩그러니 돌로 만들어진 화장실 하나가 보여서 찾아갔는데 정말 당황했다. 문이 없었다.
일단 급한 대로 3면을 가려주는 게 어디냐는 생각으로 이용했다. 가이드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바람에 날아갔을 것이라 짐작된다고 했다. 문이 없어진 지 꽤 된 것 같아 보였다. 캠핑장을 따로 관리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재밌는 경험을 또 하나 만들었다.
콩마루 라에서 내려다 본 히말라야. 마치 외계행성 같다.
마지막 구간에는 확실히 오르막이 많았다. 올라갈 때마다 토춘체 텐트가 작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올라가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앞으로 올라갈 곳의 경사를 보며 뜨악하면서 꾸준히 한 걸음씩 내디뎠다.
고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햇볕은 더욱 뜨겁고 공기는 차갑다. 그리고 건조함은 점점 더 심해진다. 하지만 올라가는 동안 보이는 설산과 삭막하게 메마른 산맥 줄기가 경이롭다. 어제까지는 산 중간에서 위쪽을 올려보며 트레킹을 했는데 절벽 산맥들과 눈높이가 어느 정도 비슷해지자 웅장함을 바로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는 말들과 야크들을 보면서 힐링했다. 숨이 가빠 한 발자국 걷기도 어려운데 이들은 이 높은 곳에서 한가롭게 식사를 하다니 새삼 부러움까지 느꼈다. 그러면서 왼편에 있는 6,400m급의 캉야체 1, 2를 보면서 엉금엉금 니말링을 향해 걸어갔다.
마침내 저 멀리 오렌지색 텐트촌이 보였다. 우리의 마지막 숙박지 니말링이다. 모든 트레커가 텐트에서 야영하지만 간이로 만들어놓은 주방과 다이닝 공간을 공유한다. 우리 포터 무릎은 야영할 자리를 맡아두기 위해 일찌감치 먼저 도착해 있었다. 혹시라도 빈자리가 없을까 봐 먼저 가서 맡아둔 것 같다.
우리의 텐트 번호는 9번, 노란색이었다. 텐트에 들어갔을 때는 햇볕을 하루 종일 받은 상태라 텐트 안의 내부 공기가 매우 뜨거웠다. 바깥은 공기가 꽤 차가운 상태여서 나는 텐트 안에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반팔을 입으니 온도가 알맞았다. 텐트 공간은 2명이서 눕고 자투리 공간에 가방 2개를 넣으면 딱 좋은 정도의 사이즈다.
텐트에서 쉬다가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 메뉴는 쌀밥, 달, 그리고 감자 파프리카 볶음인데 이 볶음이 진심 맛있었다. 한국에서 급식으로 나오는 감자볶음과 맛이 비슷해 정겨웠다.
트레킹 후 일행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여행사대표, 박정후, 포터, 필자, 가이드 순(왼쪽부터).
아무리 힘들어도 그 끝은 있다
Day 5 니말링(4,800m)~콩마루 라(5,200m)~촉도(4,000m) 13.5km
텐트 밖이 환해져서 눈이 떠졌는데 컨디션이 나쁘진 않았다. 4,800m 고도의 텐트 야영이라 걱정했지만 핫팩, 침낭, 두툼한 이불들 덕분에 잘 잤다. 다만 생수통 안에 넣은 물이 얼음물 수준으로 차가워진 것을 보며 이불 밖은 얼마나 추웠을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콩마루 라까지 올라가는 길에 햇볕이 너무 강하니 해가 더 떠오르기 전에 지나려고 좀 더 일찍 출발했다. 니말링에서 2시간 정도 오르면 된다.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진 않지만 높은 고도라 최대한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산맥과 광활한 들판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어찌나 넓은지 저 멀리 정상이 보이는데 아무리 걸어도 그 거리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가는 길이 밋밋해 보여서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생애 첫 5,000m 고도라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 다른 트레커들도 울상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당나귀를 타고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이미 정신이 혼미한지 두 눈을 감고 몸을 휘청거렸다.
그래도 끝은 있었다. 마침내 트레킹의 최고 정점인 콩마루 라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한눈에 쭉 볼 수 있고 앞으로 내려가야 할 풍경도 볼 수 있다. 이곳은 축제 분위기다. 서로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국적 성별을 불문하고 하나가 된 느낌에 마음이 벅찼다.
콩마루 라에서 촉도로 가는 하산 길은 생각보다 많이 위험했다. 바닥이 건조하고 모래가 많아서 미끄러웠고 낭떠러지 길을 지나가야 했다. 잘못 발을 디디면 가파른 언덕으로 쭉 미끄러지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걸어야 했다. 하루에 1,500m가량 내려가야 하는 긴 하산길이니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촉도에 도착해 미리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레로 다시 돌아간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댓글8새 댓글 이 글에 댓글 단 블로거 열고 닫기
인쇄